힘없이 풀어져 있는 내 운동화 끈을
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묶어주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.
어디서 본 장면인지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
그 그림은 내 머리 속에 꽤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.




그러나.

그것은 내게 불가능한 그림이란 걸  깨달았다.



그림 속의 여인은 반드시 치마나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.
꼭 짧지 않다 하더라고 발목이 드러나는 하의여야 한다.
그래야 운동화 끈이 풀렸을 때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.

또 여인은 날씬해야 한다.
아니, 다리만이라도 가늘어야 한다.
그래야만 무릎 꿇은 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.
남자가 운동화 끈을 묶고 눈을 들었을 때
튼실한 무가, 그것도 둘 씩이나 떡하니 서 있으면 서로 민망할 수 있다.

운동화는 하얀 스니커즈가 좋겠다.
물론 깨끗해야 한다.
까망 및 갖은 색 운동화는 분위기에 안 맞으며
하얀 운동화인데 때가 꼬질꼬질하면 그건 더욱 최악이다.



그림 속의 그는 또 어떠한가.
우선 키가 커야 한다. 그래야 시각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.
생각해 보자.
키가 178, 180인 그가 몸을 숙이고 내 운동화끈을 고쳐 준다면
굉장히 순정적으로 보일 것이다.
그러나 키가 작은 그가 나를 위해 앉았다고 했을 때
일어선 키와 앉은 키가 별 차이 없다면 좀 슬프지 않겠는가.
확 주저 앉아야, 편차가 커야 좋다.

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섬세해야 한다.
닌자 거북이 손가락처럼 뭉뚝해 가지고 곰실곰실 거리고 있으면 조금 낭패다.
게다가 끈도 싹싹쏙쏙 잘 묶을 줄 알아야 한다.
끈 하나 묶는 데 백만년 걸린다면 그 얼마나 힘든 상황이 되겠는가.
발을 내밀고 서 있는 그녀는 어쩌면 힘차게 다리를 걷어 올려
그의 턱을 가격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.
그는 섬세한 손길로 후루룩 묶을 수 있는 능력자여야 한다.



다 써 놓고 보니 정말.

정말 실현시키기 힘든 그림이고나.




p.s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 옆에 왠지 자전거가 있어야 할 거 같아.
     이와이 슌지 감독 탓인가.
     잃어버린 자전거에 얽힌 지난 이야기, 탓인가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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