편지와 이사와 장보기 by 뗏목

2008/10/04 11:04






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세 단어지만
나름 연상 작용을 거쳐 나온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.





<편지>

편지를 받고 싶다.

하고 생각한 순간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생각.
'혼자 사니까 별 생각이 다 드는군.'

어린 날,
세상에서 편지를 제일 많이 받을 거라는 단순한 이유로
라디오 디제이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.
머, 요즘 DJ들은 편지보다 인터넷 글들을 더 많이 보겠지만.


편지를 받기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, 고민을 조금 해 보았다.
내가 먼저 보낼까?
누구에게?
한국으로?
20일 후면 이사할 텐데, 그럼 답장은?

에잇.

이사가 사람 머리 속을 한참 복잡하게 만든다.




<이사>

하루 종일 englewood를 바짝 헤집고 다녔지만
결국 내린 결론은.
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비용 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.
이 기본적인 원리를 결코 저버릴 수 없더라.
500불 하는 집들은 지금 당장 내가 아무 창문이나 열고 들어가도
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하고 엉성했다.
건물이 좋고 아니고를 떠나
여기서 내가 밤에 떨지 않고 잘 수 있을까,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.
(물론 denver는 치안상 안전한 도시임에 분명하며
 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긴 하다.)

게다가 후진 아파트들은 그 매니저들도 후지다.
자신들의 그지같은 발음은 생각지도 않고
못 알아 듣는다고 대놓고 불친절을 떠시니 원.
international student에게는 아파트를 주기 힘들다며
부모님의 call sign을 받아 오라 하지를 않나
6개월치 rent를 한꺼번에 내라고 하지를 않나
지금 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늘 찾아갔던 아파트들보다 세 배는 좋고만
여기 매니저들은 그런 거 요구 안 했더랬는데.
확실히 둘이서 조금 큰 집을 구하는 것 보다
혼자 작은 방을 구하는 게 선택의 폭이 좁다. 온 몸으로 깨달아 버렸다. 췌.

3시간의 대장정은 이렇게 아무 소득없이 끝나고야 말았다.

내일은 glandale을 뒤집을 작정인데 그래도 괜찮은 아파트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?

아. 주말에는 장도 보고 청소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
아파트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!



<장보기>

안 그래도 며칠 전에 hsio-ping(샤오핑)에게 한아름마트 갈 때 나도 데리고 가 달라고 부탁했다.
아까 학교 끝나고 오늘 가자, 했는데 아파트 때문에 못 간다고 했다.
샤오핑네 부부는 오늘가면 이제 한참 후에 갈 거 같은데 괜찮냐고 물었고
머 별 수 있는가, yes 했지 머.

자취 생활 5개월.
서서히 궁상모드 돌입이다.
난 혼자 지내도 밥 잘 해 먹고 씩씩하게 지낸다고 자부했는데
지난 주 부터 시름시름 앓고 있는 데다가
이사 걱정에 금전적인 문제로도 압박을 받고 있으니
(새로 계약하면 한 달 rent 이외에 들어갈 돈이 많다. )
아주 즈아연즈럽게 (자연스럽게, 의 이경규 버전) 궁상 자취생이 되어 가고 있다.

이럴 때 장을 한 번 싸악 봐 죠야 하는데.
냉장고에 요리 해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게 또 든든한 구석이 된다.
나만 그런가.
(나만 그런 거 같기도 하다.)

암튼!

그래도. 난
지금의 나에 감사하고 만족한다.

어쩌면,
다시 오지 않을 나의 미국 생활이여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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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08/10/07 14:26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
    비밀댓글 입니다

  2. ㅇㅇㅅ 2010/02/11 22:36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
    돈 없을때는 역시, 슈퍼마켓에서 빵과 쨈으로...ㅠ.ㅠ
    떼우던 방랑시절이 생각나는구나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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